서평16 평등하게 가난했던, 그 아련하고 먹먹한 시절 『너하고 안 놀아』(현덕. 창비. 2010 개정판) 재미있다. 현덕의 동화집 『너하고 안 놀아』를 읽은 뒤 나의 첫 느낌은 그랬다. 더 나아가 아동청소년문학은 다양한 연령층에게 말을 거는 문학이라는 걸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17개의 작은 이야기가 담긴 1부는 내 어린 시절 동네와 동무들, 그리고 그 골목 안 풍경을 마치 영화처럼 떠올리게 한다. 20개의 제법 묵직한 단편으로 엮인 2부는 ‘인간의 삶과 세상의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문학의 본질을 서사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옥수수과자를 혼자 다 먹고 빈 종이로 입을 닦는 기동이에게 영이는 “너구 안 놀아. 당최 안 놀아 뭐.”라고 쏘아붙이고는 기동이에게 흙 한 줌을 끼얹고는 달아난다(옥수수과자 26쪽>). 그런 기동이는, 물딱총을.. 2024. 6. 9. 펭귄과 코뿔소가 펼쳐 보이는 주체와 연대의 로드무비 『긴긴밤』(루리. 문학동네. 2021) 2024년 4월 18일 세상을 떠난 우리 시대의 어른 홍세화.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는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세 가지 성격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이다. 늙은 코뿔소와 어린 펭귄의 멀고 험난한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어린 독자들에게 민주시민의 세 가지 성격 중 연대성과 주체성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나(내)’가 어린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이 작품에는 곳곳에서 ‘연대’의 소중함이 잘 드러난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고아원 코끼리들에서, 코뿔소 노든이 만난 파라다이스 동물원 앙가부의 친절에서, 잘 보이지 않는 치쿠의 오른쪽 눈이 되어주는 웜보에게서…. 이런 연대와 .. 2024. 6. 9. 지구별에서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 이산離散 문학에 대한 소고(『우리에게 우주가 필요한 이유-아동문학과 소수자 재현』(송수연. 문학동네. 2022)을 읽고) 얼마 전 타계한, 그 자신이 디아스포라였던 작가 홍세화는 그의 칼럼 「난민, 왜 하필이면 한국 땅에」에서 ‘이 땅을 찾아온 난민은 난민이라는 거울을 통해 투사된 우리의 자화상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이 글에서 『레미제라블』의 가브로슈 소년을 언급하며, 그 소년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면 우리는 그를 환대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머리(의식)도 중요하지만, 머리보다 가슴(공감 능력)이 더 중요하고, 가슴보다 발(실천)이 더 중요하다’며, ‘신자유주의가 유일사상으로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슴이나 발은커녕 머리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탄했다.(1) 송수연은 그의 아.. 2024. 6. 8. 소설, 혹은 소설적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문학적 가치는? 글쓰기의 형용모순, 죽을 수도 있는 안식의 몸짓 -『여자아이 기억』(아니 에르노. 레모. 2022)을 읽고 『여자아이 기억』. 나는 이 책을 두 번 정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문해력이 약한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이게 무슨 이야기지?’ 했다. 분량으로는 장편인데 차례도, 중간 제목도 없는 소설. 도입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황한 넋두리’는 내 책 읽기의 몰입을 방해했고, 1958년의 여자아이는 시간을 마구 넘나들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왔다. 군데군데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손가락으로 연도를 더하거나 뺄셈을 하며 한 번 더 정독했다. 그제야 내 눈에도 1958년의 여자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불온한(?) 아니 뒤셴느가 마침내 아니 에르노로 편안해지는.. 2024. 4. 21.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