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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트레킹 이야기<마지막 회_에필로그>

by 물가에서 2024. 7. 6.

5살 배기 이 어린 네팔 천사에게도 "나마스떼".

나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경의를 표 합니다

톨카(Tolka 1700)에서 페디(Phedi 1130)를 거쳐 다시 포카라(Pokhara 820)

 
나야풀에서 트레킹 9일째, 10월 28일.
 
 

카트만두 시장에서 만난 모녀. 어린 딸이 엄마의 고단한 젖을 물고 막 잠이 들었다.

 
 
나의 abc 트레킹 이야기는 전편에서 끝났다. 이번 회는 후일담. ^^

톨카에서 페디까지 내려가서 포카라로 돌아가는 여정은 대체로 무난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실 극적인 어떤 이야기나 강렬한 사건(?)은 없다. 그저 담담히 나의 트레킹이 끝나가고 있을 뿐이다.
 
날씨는 언제나 처럼 맑았고, 바람은 아주 시원하게 불어주고 있었다. 걷는 걸음을 잠깐 멈춰 눈을 돌리면 들판이 온통 황금빛이다. 여기도 수확의 계절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내 포터 프리티와 가이드 먼은 어제(10월 27일) 일을 계기로 엘런과 케리와 아주 가까워졌다. 이들 네 명과 나는 이제 영어와 네팔어를 섞어가며 한 마디씩 주고 받고 있다. 간혹 한국말도 한 마디씩 레슨을 해 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 '나마스떼'
 
여기 네팔에 와서 내가 가장 많이 쓴 네팔 말은 단연 ‘나마스떼’였다. 우리말 ‘안녕하세요’ 정도로 해석이 되는 이 ‘나마스떼’라는 말을 나는 여기서 입에 달고 살았고, 아주 사랑하게 되었다.
 
“내 안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야.”
 
내 가이드 먼바들이 나에게 들려준 ‘나마스떼’의 뜻이다.
 
그의 말 대로라면 ‘라마스떼’는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연상케 한다.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인사말이 또 있을까.
 
그 다음으로 내가 많이 한 네팔 말은 ‘샤띠’였다. 샤띠는 우리말로는 ‘친구’, 혹은 ‘동무’로 해석된다. 먼과 프리티, 엘런과 케리, 그리고 나, 우리는 산을 내려오면서 모두 ‘샤띠’가 되었다.
 
톨카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약간의 힘든 코스가 있었고, 마오이스트를 만나는 등 몇몇 에피소드가 있었다. 힘든 코스는 언제나 처럼 땀으로 채워 넘겼다. 그리고 다시 만난 마오이스트에게는 트레킹 첫날 기부(?)했던 영수증을 보여주고 무사통과.
 

드디어 페디 도착. 저 아래 보이는 도로는 포카라까지 이어진다.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저 아래 페디 마을이 보인다. 때마침 시원한 바람이 키 큰 나무 사이를 지나며 땀을 식혀준다. 잠깐 쉬는 동안 먼이 손가락을 들어 저 아래를 가리킨다.
 
“저 아래 내려가면 택시가 있어. 그걸 타고 포카라로 갈 수 있어.”
 
 
포카라에서의 마지막 밤엘런ㆍ케리와의 이별
 
택시비는 500루피. 포카라와 나야풀의 절반 값이다. 오늘까지 9일 간의 트레킹 일정은 여기서 택시를 타면 끝이 난다.
 
“엘런, 케리, 포카라에 가면 뭘 할 거야?”
 
내가 물었다. 
 
“난 먼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저녁에 빨간 포도주와 피자를 먹을 거야. 동욱 넌?”
 
엘런이 대답하며 나에게 되물었다.
 
“난 우선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고 싶어. 여기 먼이랑, 프리티와 함께.”
 
그래서 우리는 산에서 맺은 인연을 포카라에서의 마지막 밤에 함께 풀어내기로 했다.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탄 우리는 차례로 포카라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레이크 사이드의 ‘부메랑’ 식당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휴양의 도시 포카라' 그 명성에 걸맞게 페와호수 주변은 여유와 한가로움이 흐른다.

 
 
약속대로 엘런은 큼직한 포도주를 세 병이나 사들고 왔고, 피자와 중국식 닭고기 요리로 우리의 성공적인 ABC트레킹을 자축했다.
 
포카라의 늦가을 어둠은 일찍 찾아왔고, 이제는 각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엘런과 케리가 아쉬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다가왔다.
 
“동욱, 만나서 무척 반가웠어.”
 
훅 들어왔다. 미쳐 뭐라고 말 할 겨를도 없이. 둘은 나에게 팔을 벌렸고 나는 둘과 포옹했다. 따뜻하게. 우리는 서로의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아주 쿨~ 한 이별을 했다.
 

포카라의 티베트 난민촌 입구. 검은 소 한 마리가 한가롭게 어슬렁 거리고 있다.

 

수십년 전 눈 덮인 히말라야를 목숨 걸고 넘어왔을 한&amp;nbsp;노인이&amp;nbsp;집 앞 뜰에 앉아 불교 법륜통을 돌리며 불경을 외고 있다.

 
 
포카라의 밤, 럼 한 병을 비우고 엽서를 쓰다
 
10월 29일, 다시 포카라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여기 포카라에서, 온전히 포카라를 즐길 계획이다.
 
아침 식사를 한 후 나는 택시를 불러 사랑콧에 올랐다. 사랑콧은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 산군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사랑콧 전망대 아래까지 택시로 30분, 거기서 다시 걸어서 30분만에 나는 전망대에 올랐다.
 
ABC에서의 감동이 너무 진해서였을까. 사랑콧에서 본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는 기대했던 것에 미치치 못했다. 옅은 안개까지 끼어있어 감흥을 더 떨어뜨렸다.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가장 안전하고 편하게 왕복할 수 있는 그린라인 버스. 카트만두-포카라 비행기는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문 때문에 나는&amp;nbsp;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돌아갈 때 이 그린라인을 이용했다.

 

그린라인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점심을 먹는 레스토랑. 버스 요금 15달러에는 이 점심 값이 포함돼 있다.

 
 
뛰듯이 사랑콧을 내려온 나는 다시 택시를 탔다. 시간이 나면 꼭 한 번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포카라 자왈라켈의 ‘티베트 난민촌’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왈라켈 티베트 난민촌은 레이크 사이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눈에도 난민촌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민촌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큰 건물은 역시 라마불교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학교도 있었다.
 
가을의 따가운 한낮 햇볕 탓인지 골목 어귀 곳곳에 음식 쓰레기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라마불교 사원에서 나온 라마승들의 모습도 보였다. 낮은 시멘트 담벼락 너머에는 마니차(불교 법륜통)를 돌리면서 불경을 외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 노인 역시 수 십 년 전 목숨을 걸고 저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여기까지 왔을 거다.
 

카트만두 거리에서 가장 효과적인 이동수단. 택시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가다가는 1km 가는 데 한 시간도 더 걸릴 지 모른다. 여기 카트만두 시내에서는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를 때도 있다.

 
너무 조용한 티베트 난민촌을 가만히 빠져나온 나는 다시 오후의 페와호수 앞에 앉았다. 먼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은 포카라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숙소 앞 구멍가게로 걸어갔다. 거거서 나는 네팔 전통 칼(쿠크리)이 그려진 값 싼 럼 한 병을 샀다.
 
럼 한 병을 깨끗이 비운 후 나는 처음 카트만두에 왔을 때 산 세 장의 엽서를 꺼냈다. 이 엽서들이 모두 주인을 찾아갈 지 의심스러웠지만 빼곡이 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중 두 장은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제대로 주인을 찾아갔는지, 아니면 다행히(?) 전달되지 않았는 지, 나는 아직 그 행방을 모른다.
 
다음 날(10월 30일) 나는 그린라인을 타고 카트만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나는 네팔에서 가장 좋다는 안나푸르나호텔에서 트레킹 중 가장 럭셔리한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31일 카트만두 타멜거리의 북쪽에 있는 ‘네팔짱’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은 후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안녕~! 카트만두. 안녕~! 네팔. 안녕~~! 안나푸르나~!

 
** ABC트레킹을 마칠 즈음의 포카라와 카트만두에서도 여러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순수 트레킹 이야기에서 벗어난 게 많아 여기서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세요^^*

 
 
***트레킹 메모***
1) ABC 트레킹은 크게 두가지 경로가 있다.
나처럼 나야풀에서 출발하여 푼힐을 거쳐 데우랄리-MBC-ABC까지 오른 후 뉴브릿지(1340)-란드룩(1565)-톨카(1700)-담푸스(1650)-페디(1130)로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일정이 빡빡한 사람들은 거꾸로 페디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ABC까지 최단 거리로 올라갈 수 있는 이 코스는 초반 경사가 꽤 가파르다. 내 생각에는 정작 ‘트레킹’의 참맛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코스다.
 
2) 네팔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겸 트레킹 안내소가 몇 개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한선미 씨가 운영하는 ‘네팔짱 www.nepal-jjang.com’과 류배상 김지나 부부가 운영하는 ‘우리집www.nepal.pe.kr’이다.
내 경우에는 처음부터 이 트레킹 안내소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아예 카트만두 행 발권부터 트레킹에 관한 모든 것을 여기에 맡길 수도 있다. 가이드 및 포터 섭외는 물론이고, 공항 픽업과 트렌짓 서비스까지 모두 이용할 수 있다.
 
3) 네팔은 휴대폰 로밍이 가능하다. 그러나 카트만두나 포카라 등 일부 도시를 빼고는 휴대전화 연결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편지나 엽서는 카트만두나 포카라에서 한국으로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소포 같은 물건은 배송사고가 잦다고 한다. 편지나 엽서도 안전한(?) 도착을 원한다면 카트만두의 큰 호텔의 메일박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