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2 소설, 혹은 소설적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문학적 가치는? 글쓰기의 형용모순, 죽을 수도 있는 안식의 몸짓 -『여자아이 기억』(아니 에르노. 레모. 2022)을 읽고 『여자아이 기억』. 나는 이 책을 두 번 정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문해력이 약한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이게 무슨 이야기지?’ 했다. 분량으로는 장편인데 차례도, 중간 제목도 없는 소설. 도입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황한 넋두리’는 내 책 읽기의 몰입을 방해했고, 1958년의 여자아이는 시간을 마구 넘나들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왔다. 군데군데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손가락으로 연도를 더하거나 뺄셈을 하며 한 번 더 정독했다. 그제야 내 눈에도 1958년의 여자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불온한(?) 아니 뒤셴느가 마침내 아니 에르노로 편안해지는.. 2024. 4. 21.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작가의 숙명인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려면 -조지 오웰 에세이 를 읽고 나는 내가 만들던(지금도 만들고 있는) 낚시 월간지에 한때, ‘정치, 혹은 사회적 글쓰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2006년 6월호부터 2015년 10월호까지 10년간 나는 매월 1쪽, 많으면 2쪽짜리 ‘칼럼’를 썼다. 당시 내 칼럼은 (대부분) 낚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당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썼다. 낚시잡지에 낚시 이야기가 아니라 뜬금없이 정치 이야기를 하고, 노동과 사회 문제를 끄집어냈던 것이다. 이 시기, 즉 내가 낚시잡지에 ‘사회적 글쓰기’를 한 시기는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고착화하던 노무현 정권 중반부터 이명박 정부를 거쳐 탄핵 정국 직전의 박근혜 정부 때까지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의 서평을 쓰면서 부끄.. 2022. 10.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