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파니(Ghorepani 2860)에서 타다파니(Tadapani 2630)까지
경로 / 고레파니(Ghorepani 2860)-푼힐(Poon Hill 3193)-고레파니(Ghorepani 2860)-반단티(Ban Thanti 3181)-타다파니(Tadapani 2630)
10월 22일. 나야풀에서 3일째, 카트만두에서 5일째.
고레파니 롯지의 내 방 창에 별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언제 눈이 떠졌는지 모른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 단지 다섯 시간 정도 잤을 뿐인데, 피로가 싹 가신다.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아~ 아~!’
엎드려 바라본 창밖 하늘에는 별똥별 잔치가 한창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큰 별똥별 하나가 꼬리를 늘어뜨리더니 이내 작은 별똥별들이 뒤를 따른다.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하늘강 위를 흐르는 별똥별을 세는데, 갑자기 무더기로 흐른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나는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아차, 소원을 빌어야지!’ 생각했을 때는 그 황홀하던 우주쇼가 막을 내린 후였다.
새벽 3시, 문득 눈을 뜨니 우주쇼가 펼쳐지고 있다
새벽 4시 반, 나는 아래층에서 자고 있는 먼을 깨웠다.
“먼, 일어나. 가자 푼힐.”
이내 빨갛게 충혈된 먼의 눈이 방문 밖으로 나온다. 어젯밤 락시를 마시고 댄스파티를 했던 먼은 상당히 졸리는 표정이다.
“지금 올라가면 좀 빠를텐데…….”
“5시 반 쯤이면 해가 뜨지 않을까? 천천히 올라가자.”
그렇게 우리는 남들보다 일찍 서둘러 푼힐로 향했다. 먼의 말대로 정말 우리 앞에 올라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깜깜한 산길을 걸어올라가면서 하늘을 보니 어제보단 많이 개어있었지만 여전히 안개가 걷히지 않고 있다. 살짝 걱정스러웠다.
나는 어제 저녁과 비슷한 속도로 푼힐전망대에 올랐다. 아직은 아무도 없다. 전망대 한 쪽에서 뜨거운 차를 준비하는 간이매점의 주인만 분주하다.
새벽 5시 반, 아직 사방이 깜깜하다. 이윽고 저 아래에서 랜턴 불빛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동쪽 산꼭대기부터 푸르스름한 빛이 일더니 눈앞에 안나푸르나 산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다행히 하늘은 완전히 갰고, 산은 웅장하게 다가왔다. 어느새 잔뜩 모여든 트레커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하다.
먼이 눈 앞에 펼쳐지는 안나푸르나 산군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나에게 그 이름을 알려준다.
“저기 제일 높은 산이 안나푸르나 사우스야. 맨 왼쪽부터 닐기리, 바르시카, 안나푸르나 사우스,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푼힐, 지금까지 가장 감동적인 해오름
시간이 지나면서 북쪽 안나푸르나 산군의 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거무튀튀하게 아득하던 산들이 푸르스름하더니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꼭대기부터 황금빛으로 바뀐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태어나서 이런 감격적인 일출은 처음이다. 눈 앞에는 설산 봉우리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1시간 땀 흘려 걸어 올라와서 다시 1시간 정도 추위에 벌벌 떨었지만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그걸 다 보상하고도 남음이다.
7시 30분 이제 완전히 해가 떠올랐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맑다. 고레파니의 숙소로 내려가는 걸음이 날 듯 가볍다.
티베트 빵과 블랙티로 가볍게 아침식사를 마친다. 오전 8시 45분. 다시 길을 나선다.
우선 긴 돌계단이 펼쳐진다. 단체로 온 스페인 트레커들이 우리 뒤로 쳐진다. 1시간 정도 걷자 마침내 오르막 돌계단이 끝났다. 여기서부터는 밀림지대. 그리고 랄리구라스가 지천이다.
“먼, 이게 랄리구라스지? 야 여긴 정말 랄리구라스 천지다. 랄리구라스 가든이야 랄리구라스 가든.”
‘랄리구라스 가든’이라는 내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먼도 내 말을 따라한다.
“랄리구라스 가든? 맞아. 랄리구라스 가든.”
여기서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다. 날씨는 다시 약간 흐려져 있고, 바람이 불어 한기가 느껴진다.
오전 10시 30분. 나는 데우랄리의 한 롯지에 도착했다. 데우랄리?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직전의 롯지가 있는 곳의 이름이 데우랄리인데, 여기도 같은 이름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전날 낭게단티(Nangge Thanti 2430)에서 만났던 4명의 한국 아가씨들을 여기서 다시 만났다. 그들 중 한 명이 이 문제에 대해 그럴듯한 해석을 내 놓았다.
“우리나라 산에도 같은 봉우리 이름이 많잖아요. 국사봉, 선비봉 같은……. 데우랄리도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럴듯하다. 맞는 말 같다. 인도에서 들어온 이들은 나처럼 ABC가 목적이 아니라 타다파니까지 간 후 나야풀로 돌아간다고 한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이들과의 마지막 동행길이 될 것이다. 난 여기서 이 아가씨들에게 한 잔 산다. 그리고 우리 다섯 명은 나란히 어색하게 서서 사진도 찍었다. 서로의 이름과 메일 주소를 주고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려간 만큼 이어지는 끝없는 오르막길
다시 길을 재촉한다. 데우랄리에서 반단티(Ban Thanti 3181)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계곡을 옆에 끼고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반단티에서 점심을 먹은 후부터 오늘의 종착지인 타다파니(Tadapani 2630)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내려온 만큼 올라가는 것이다. 산 하나를 완전히 넘어서야 타다파니 마을이 보인다. 1시간 거리를 중간에 두 번이나 쉬면서 올랐다. 나야풀에서 계산하자면 이제 겨우 트레킹 3일째. 그런데 살짝 후회가 생긴다.
‘내가 왜 돈 들여가면서 이 고생을 하나...?’
다리가 뻐근하고 어깨와 허리가 쑤신다. 다행히 타다파니의 롯지에서는 ‘핫샤워’가 가능하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핫샤워’란?
한국의 목욕탕이나 사우나를 생각하지 마시길. 그저 미지근한 물이 졸졸(그야말로 졸졸) 내려오는 샤워기가 있다는 것 뿐이다. 그마저도 오후 늦은 시간에는 찬물로 바뀐다. 태양열로 데워진 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정도 시설이 있다는 건 여기선 참 고마운 일이다.
야채 치즈롤과 생강차로 저녁식사를 한 후 물통에 뜨거운 물을 담았다. 그 안에 녹차 티백 하나를 넣은 나는 바로 침낭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해드랜턴을 껐다.
내일은 촘롱(Chhomrong 2170)까지 간다.
*** 트레킹 메모 ***
1) 아침(티베트 빵, 블랙티)+점심(삶은 감자, 블랙티)+저녁 식사(야채치즈롤, 생강차)+롯지 방 값+중간에 마신 찻값=800루피 정도.
2) 만약 밤에 비가 내린 후 갠다면 새벽 우주쇼(별똥별)를 놓치지 말 것.
3) 고레파니에서 푼힐전망대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 따라서 전날 일몰도 보고, 다음날 새벽 일출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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