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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트레킹 이야기<2>

by 물가에서 2024. 7. 6.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카트만두 공항에 내린 후 김홍성(왼쪽), 박범신(가운데) 작가와 함께

 
10월 18일 오후 1시 반. 우리가 탄 대한항공 KE695 편은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여기서 ‘내가 탄’이 아니라 ‘우리가 탄’이라고 한 이유는 네팔에 갈 때는 나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 네팔 카트만두까지 나는 김홍성 시인과 내 대학 선배인 조광래 씨네 가족(조 선배 내외와 아들 셋), 그리고 프리랜서 사진 작가 김희수 씨와 함께 ‘비행기 여행’을 했다.
 

김홍성 시인이 카트만두에서 운영하고 있던 식당, '소풍'.

 
여기서 잠깐, 나의 동행자들을 소개하자면,
 
김홍성은 시인이다. 그는 네팔에서 8~9년 살다가 지난 2006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포천 산정호수 상류의 산안마을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히말라야 40일 간의 낮과 밤>>,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등의 네팔에 관한 에세이가 있고, 시집으로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등이 있다. 당시 김홍성 시인은 네팔 카트만두에서 ‘소풍’이라는 한국식당을 운영하면서 한국과 네팔을 왕래하고 있었다.
 
조광래 씨는 나의 대학 선배로 한때 월간<사람과 산>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때려치운 후 지금은 서울 대치동에서 분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홍성 시인이 한 때 <사람과 산>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할 때 이 두 사람은 서로 인연을 맺었다. 조 선배는 김홍성 시인에게 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계획을 듣고는 즉석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하는 1주일 간의 네팔 여행을 급조했다.
 
김희수 씨는 옛날 <여원> 등 여러 잡지사 사진기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김홍성 시인과는 <여원> 기자 시절 선후배 관계. 그 역시 김홍성 시인의 네팔 행 소식을 듣고는 만사를 때려치우고 같은 날 항공권을 예매했다.
 

아침 카트만두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 낮동안의 카트만두 거리는 먼지와 쓰레기, 온갖 오물들로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지만 새벽마다 이들의 수고로거리는 다시 깨끗해진다.

 

카트만두의 정육점. 깔끔하게(?) 진열된 양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네팔 행 비행기 안에서 만난 박범신
 
나는 네팔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만난 박범신 작가와 기념촬영을 했다. 이미 여러 차례 네팔 여행을 통해 <<나마스떼>> 등 네팔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한 박범신은 이번에 한 여행사의 권유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나섰다.
 

포카라 행 승합차 운전수의 딸이 달밧을 먹고 있다. 오른쪽 사진이 달밧인데, 맛은 괜찮다. 나도 트레킹 중에 산에서 종종 달밧을 먹었는데, 저 아가씨 처럼 손으로 먹는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박범신 선생님이시죠?”
“아예, 그렇습니다.”
“반가워요 선생님. 선생님 소설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연재하고 계신 거. 촐라체.”
“아예, 고맙습니다.”
“근데, 1주일 씩 네팔에 계시면 소설 연재는 어카나요?”
“미리 다 써두고 와서 괜찮아요. ㅎㅎ”
 
나와 박범신 작가와 대화에 별 내용은 없었다. 박범신 작가는 ‘1주일 간의 트레킹이라 일정이 굉장히 빡빡하리라는 것과 어쩌면 자신들 일행이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올 때 올라가는 나와 한 번 더 산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다.
 

포카라 가는 길. 트럭 두 대가 교행하다가 사고가 났다. 한 트럭이 길 가 배수구 쪽으로 추락하는 걸 사람들이 막고 있다. 포카라 가는 길이 워낙&amp;amp;amp;nbsp;좁아서 이런 광경은 흔했다.

 
카트만두 공항에는 김홍성 시인의 ‘소풍’ 식구들의 승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합차를 타고 ‘소풍’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경. 김홍성 시인의 수화물 중 가장 늦게 나온 ‘고추장 통’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김 시인은 ‘소풍’에서 쓸 고추장 5통을 한국에서 가져왔던 거였다.
 
카트만두에서 우리의 숙소는 자연스럽게 ‘소풍’ 뒤에 있는 ‘포탈라 게스트하우스’로 정해졌다. 조 선배네 가족들이 두 방에 나눠 들었고, 나와 김희수 씨가 한 방을 썼다. 김홍성 선생은 ‘소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집이 있다.
 

포카라 페와호수. 휴양도시 포카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관광객들은 이 호수에서&amp;amp;amp;nbsp;뱃놀이를 하고, 호숫가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일광욕을 즐긴다.

 
시인이 소개한 가이드 ‘먼바들’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김홍성 시인이 소개한 가이드 ‘먼바들 마갈 Manbahadul Magr’을 만났고, 그와 하루 1,000루피에 계약했다. 포터는 다음날 포카라에서 먼바들이 구해오기로 했다.
원래 나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그린라인 버스를 타고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카트만두에 도착한 날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인 ‘다사인(한국의 추석 쯤 되는 듯)‘ 시작 일. 당연하게도(?) 나는 그린라인 티켓을 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승합차로 우리 다 같이 포카라까지 갑시다. 거기서 동욱(나) 씨는 다음날 바로 트레킹 진행하시고, 조광래 씨 가족과 희수 씨는 나랑 같이 포카라에서 며칠 보낸 후 우리 일정을 진행 합시다.”
 
고맙게도 김홍성 시인이 아주 시원스럽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음날인 10월 19일 오전 8시. 우리는 ‘소풍’ 앞에서 승합차를 타고 포카라로 향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는 거의 외길이었다.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탄 낡은 승합차는 차선도 없는 고갯길을 굽이굽이 잘도 간다. 최고 속도는 시속 60km 정도. 차가 낡기도 했지만 도로 사정이 더 이상의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전 10시경 트리슐리강(Trisuli liver)을 끼고 있는 노상 식당에서 우리는 달밧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4시간을 더 달려 ‘무클링’이라는 작은 마을의 휴게소에 도착했다. 나는 밀크티(우유와 홍차를 섞은 차, 네팔인들은 그냥 ‘찌아’라고 부른다) 한 잔을 마셨다. 여기서부터는 트리슐리 강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포카라 쪽에서 흘러오는 마르샹디강(Marshyandi liver)을 거슬러 올라간다.
 

페와호수 옆에서 네팔 어린이들이 탁구를 치고있다. 내 어릴 때도 저런 열악한 탁구를 한 것 같은데...^^

 
페와 호수 옆에서 보낸 우리들의 ‘마지막 포카라의 밤’
 
계속 꼬부랑길이 이어지다가 포카라 진입 20km 전부터 직선도로가 펼쳐진다. 드디어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 피스풀로드에 있는 ‘마운트리조트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푼 우리는 페와(Phewa)호수 바로 옆에 있는 ‘부메랑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셨다.
 
나는 다음날(20일) 가이드 ‘먼바들’과 함께 트레킹의 출발지인 나야풀로 이동할 예정이다. 나의 오늘 이 밤이 김홍성 시인 일행과 네팔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2차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우리는 밤 늦도록 맥주와 럼, 그리고 김희수 씨가 한국에서 공수해온 꼬냑으로 포카라의 첫날이자 마지막 밤을 보냈다.
 
드디어 내일 나는 나야풀로 이동해서 ABC 트레킹을 시작한다.<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