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속 단편들의 배열 순서에 관한 소고
조세희의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사실 독자들에게 불친절한 작품이다. 여러 인물로 시점을 달리해서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사건이 시간순으로 나열돼 있지 않기에 적지 않은 독자들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끝까지 읽어내는 걸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 가운데 하나이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지금도 꾸준히 읽히면서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 반열에 올라있는 작품이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당대의 베스트셀러를 넘어 2022년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에게 읽히고 있는 까닭은 뭘까. 산업화 시대 도시 빈민들의 지옥 같은 삶과 자본의 대립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문체와 서술 기법에서 문학적 완성도를 정점까지 끌어올린 작품이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1970년대의 ‘난장이’ 가족은 2022년 지금도 한국 사회에 실존하는 ‘99%의 우리’라는 한국인들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은 현재 진행형 소설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속 단편 소설들의 배열 순서에 주목하고, 거기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편 배열 순서에 보이는 작가의 의도
모두가 알고 있듯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12개의 단편 소설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읽힌다. 그런데 조세희는 이 소설집 속 단편들을 한 번에 써 내려가지 않았다.
<문학사상> 1975년 12월호에 「칼날」을 먼저 발표하고, 이 소설집의 프롤로그 격인 「뫼비우스의 띠」를 이듬해인 1976년 <세대> 2월호에 발표했다. 1976년 <뿌리 깊은 나무> 9월호에 「우주 여행」이 발표되고, 중편 소설 격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문학과지성> 1976년 겨울호에 실린다. 이후 조세희는 1977년에 「육교 위에서 (<세대> 2월호)」, 「궤도 회전 (<한국문학> 6월호)」, 「기계 도시 (<대학신문> 6월 20일)」,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문학사상> 10월호)」,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문예중앙> 겨울호)」를 발표하고, 1978년에 「클라인씨의 병 (<문학과지성> 봄호」, 「에필로그 (<문학사상> 3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썼다.
이렇듯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조세희가 1975년 11월부터 1978년 6월까지 2년 반 동안 여러 지면에 발표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연작 소설 형태로 발간한 소설집이다.
그런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칼날」보다 나중에 쓰인 「뫼비우스의 띠」가 먼저 나오고, 「에필로그」보다 나중에 쓰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가 먼저 수록돼 있다.
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차례에 나타난 작품의 배열 순서는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 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이다.
조세희는 이 소설집의 프롤로그 격인 「뫼비우스의 띠」와 에필로그 격인 「에필로그」를 차례의 맨 처음과 끝에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대립을 각 단편에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장편소설로 읽히는, 작품 전체로 확장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 이 두 계급은,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와 「에필로그」에 적힌 첫 문단을 비교해보자.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였다.
--「뫼비우스의 띠」 13쪽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했다. 오분의 일 정도는 의문을 품었다. 그들은 대입 예비고사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에필로그」 304쪽
「뫼비우스의 띠」의 첫 문단은 4개의 문장이고, 「에필로그」의 첫 문단은 5개의 문장이다. 이 중 첫 두 문장은 같다. 나머지 2개의 문장(「뫼비우스의 띠」)과 3개의 문장(「에필로그」)은 약간 다르다. 「뫼비우스의 띠」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했지만 대입 예비고사가 끝난 후에는 수학 성적이 좋지 않은 오분의 일의 학생들이 교사에게 의문을 품는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교사는 ‘간단한 뫼비우스의 띠에 많은 진리가 숨어’있다고 말한다(29쪽). 「에필로그」에서 교사는 ‘한 주전자의 커피와 한 말의 술을 마시면서 좋은 글을 못 쓰고 울기만 한 나를 이해하라’며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는 능력을 가진 혹성인들이 있는 혹성으로 간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뫼비우스의 띠」와 「에필로그」에 압축돼 있다. 프롤로그 격인 「뫼비우스의 띠」와 「에필로그」 사이에 들어있는 10편의 작품은 다른 시점(화자)를 통해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대립 양상을 독자들에게 펼쳐 보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작가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 ‘사랑’과 ‘교육’으로 서로 화해하기를 희망한다(「뫼비우스의 띠」).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이 두 계급은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고, 안과 밖이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화해할 수 없다(「에필로그」)고 말한다.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대립은 '무한 순환'
조세희는 「칼날」을 시작으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까지 12편을 1975년 11월부터 1978년 6월까지 다양한 매체에 발표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칠십년대는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고 말한다(<이성과힘> 초판 18쇄 '작가의 말'에서).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작가는 ‘어느 재개발 지역 동네에 가서 철거반과 싸우고 돌아오다 작은 노트 한 권을 사’서 난장이 연작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는 그러나 이 시대의 비참함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문’과 ‘군홧발’을 피해 자신의 글이 살아남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읽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문을 단문으로 줄여야 했고, 장편을 조각조각 잘라야 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12개의 작품을 쓰고, 그것을 하나로 엮었다. 프롤로그(「뫼비우스의 띠」)와 에필로그(「에필로그」)를 포함한 12편의 작품은 사실주의와 판타지적 요소가 적절하게 결합 된 연작 소설로 거듭났다.
「칼날」보다 뒤에 발표한 「뫼비우스의 띠」를 맨 앞에 놓고,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보다 먼저 발표한 「에필로그」를 맨 뒤에 배치함으로써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대립은 필연적이며 무한 순환한다고 말한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끝없는 대립과 상호 파괴를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1970년대에 겪지 못했던 혁명이 아직도 우리에게 오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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