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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by 물가에서 2022. 11. 7.

한국의 난장이들은 지금도 매일 스러지고 있다

 

나는 이 책을 2002년에 처음 읽었다. 지금 다시 꺼내 보니 「뫼비우스의 띠」부터 「칼날」, 「우주 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곳곳에 귀퉁이가 접힌 자국이 남아있다. 그 뒤로는 깨끗했다. 읽다가 말았다는 증거다. 사실은 다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난쏘공』은 당시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인 나에게는 숨쉬기 힘들 만큼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이후 나는 『난쏘공』을 잊었다.

2009년 1월, 이른바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그해 여름 평택 쌍용차의 철판 지붕 위에서 노동자들을 토끼몰이하는 공권력이 있었다. 2014년 6월 ‘세월호 참사’ 후 작가 성석제는 ‘21세기판 난쏘공’이라 할 만한 장편소설 『투명인간』을 발표했다.

그리고 2022년.

올해 6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0.3평 철창 안에 가두었다. 10월 15일에는 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다. 10월 26일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두 명의 광산 노동자가 매몰됐다가 9일만에 구조됐다. 10월 29일에는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깔렸고, 그들 중 156명이 숨졌다.

조세희가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내놓은 후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도 한국에서의 노동계급은 그 위치에 변화가 없다. 난장이에서 투명인간으로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의 수많은 난장이와 투명인간들이 매일 끼이고, 치이고, 깔리고, 묻히고, 잘리고, 추락하고 있다.

난쏘공 속 단편들의 발표 시점과 화자들

나는 『난쏘공』을 도시 빈민과 노동계급의 문제를 다룬 현대소설의 시작점이라고 정의한다. 『난쏘공』은 12편의 작은 이야기(단편)들을 하나로 묶은 ‘연작 소설집’이다. 열두 단편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읽힌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는 「뫼비우스의 띠」와 마지막 「에필로그」의 곱추와 앉은뱅이 이야기 사이에 난장이 가족과 주변부 인물들(신애, 윤호, 지섭, 경훈 등) 의 이야기 10편이 유기적으로 엮여있다.

그런데 「뫼비우스의 띠(‘세대’ 1976년 2월호)」와 「에필로그(‘문학사상’ 1978년 3월)」를 뺀 10편은 각각 시점(화자)이 다르고, 그 서술의 흐름이 시간순이 아닌 게 군데군데 눈에 띈다.

「칼날(‘문학사상’ 1975년 2월호)」부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창작과비평사’ 1978년 여름호」까지 10편의 배열은 작품이 발표된 순서와 같다. 「뫼비우스의 띠」는 「칼날」보다 늦게 발표한 것인데, 『난쏘공』에서 프롤로그 식으로 놓여있다. 「에필로그(‘문학사상’1978년 3월)」는 「클라인 씨의 병(‘창작과비평사’ 1978년 봄호)」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것이고,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보다 앞서 발표한 것이다.

 

작품의 핵심 내용

소설집 『난쏘공』은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작가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작가의 말>에서 ‘무엇이 되었던 우리에게 칠십년대는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고 썼다. [이성과 힘]. 초판 18쇄. 2002년 9월 1일.)

산업화 시대의 최하위 계급인 철거민 가족(난장이 가족)이 파괴되고, 거짓 희망에 속으며, 모멸과 폭력을 당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집의 기둥 이야기이다.

난장이 가족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집이 철거당하고, 난장이는 자살한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재벌회사의 도시(은강)로 이주한 난장이의 아내와 아들(영수, 영호) 딸(영희)은 은강의 계열회사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다(「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영수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 권리 투쟁을 한다(「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영수는 행복동 집이 철거당할 때 난장이 가족 대신 저항한 지섭을 다시 만나고 노동자가 지켜야 할 곳이 ‘현장’이라는 걸 깨닫는다「클라인 씨의 병」). 영수는 은강 회장의 동생(경훈의 숙부)을 칼로 찔러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는다(「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인상적인 대목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동생 머리맡에 사진 한 장이 놓여있었다. 아내가 갖다 놓은 것이다. 동생의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을 제일 약하게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웃고 있었다.

-「육교 위에서」

 

“얘들이 못된 일을 했나요? 왜 반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야단야요. 죄를 지은 건 그들야요.”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아버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통을 받은 것은 우리였다.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생각해볼 문제

1. 여러 개의 단편 소설이 묶여 하나의 장편소설로 읽히는 예는 『난쏘공』 말고 또 어떤 것이 있나?

2. 『난쏘공』 속 단편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 중 신애와 지섭, 그리고 윤호와 경훈은 난장이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가?

3. 4차혁명 시대 현재의 노동자 계급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 난장이인가, 투명인간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