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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트레킹 이야기<1>

by 물가에서 2024. 7. 6.

※ 이 포스팅은 지난 2007년 가을 ABC 트레킹을 하면서 당시에 썼던 일기를 다시 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쌀과 밥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의 롯지 뒤편 언덕에 걸린 불교 기도 깃발.

 
10월 26일 새벽 5시. 여기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의 생추어리 롯지(Annapurna Sanctuary lodge).

절로 눈이 떠진다. 밖은 아직 깜깜하다. 공기가 좋다. 깨끗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겠다 싶던, 방전된 어제의 몸이 아니다. 피로감이 전혀 없다.

겉옷을 껴입고 방문을 나선다. 지금 내 앞에는 천상의, 아니 신들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신들의 세상에서 아침을 맞다
 

새벽 5시. 롯지 마당에서 본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

 
‘아~ 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입 밖으로 흐른다. 마치 검은 도화지 위에 작은 보석 알갱이를 뿌린 것 같은 하늘이다. 깜깜한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총총 박혀있다.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와 히운출리(Hiun Chuli 6441m), 그리고 마차푸차레(Machhapuchhre 6997)가 별빛을 받아 눈앞에서 하얗다.
 
나는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카메라를 들고 나온다. 삼각대는 애초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당 문 옆에 버려진 듯 놓인 어느 포터의 때 묻은 운동화가 있다. 주워들었다. 나는 그 운동화를 롯지 마당의 나무 탁자 위에 놓고, 카메라 렌즈를 운동화 위에 걸쳐 하늘을 향해 고정했다.
 
렌즈를 마차푸차레(Machhapuchhre 6997),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 히운출리(Hiun Chuli 6441m) 쪽으로, 차례로 향하게 한 후 한 컷씩 찍어본다. 설산과 까만 하늘, 그리고 그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찍어본다. 다행히 릴리즈가 있어 거의 흔들림 없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ABC를 알리는 푯말에서 가이드 먼바들과 한 컷.

 
오전 6시. 서서히 동이 터 오른다. 동쪽 마차푸차레(Machhapuchhre 6997) 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윽고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와 히운출리(Hiun Chuli 6441m) 산군도 거대한 황금의 빙하로 변해간다.

완전히 해가 오를 때까지 여기 안나푸르나는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이다. 뽀얗게 수줍은 설산이었다가 눈 덮인 웅장한 산으로, 또 거대한 황금 봉우리가 되었다가는 어느새 맨눈으로는 바로 쳐다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신 ‘풍요의 여신’이 된다.
 
‘안나푸르나’는 우리들에게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뜻은 이것과는 좀 다르다. 내 가이드 먼바들이 전날 오전 데우랄리 롯지를 나서며 나에게 들려준 안나푸르나의 뜻은 이랬다.
 
“‘안나’는 쌀 같은 곡식을, ‘푸르나’는 접시 가득 푸짐하게 담긴 모습을 뜻하는 거야.”
 
그러니 사실 안나푸르나는 신의 이름이 아니라 쌀, 혹은 밥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가 그만큼 풍요로운 곳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네팔 사람들의 작은 바람이 그들의 산을 통해 ‘안나푸르나’로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 ‘안나푸르나’는 이름 자체가 주는 묘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안나푸르나는 ‘너무 예쁘다’.
 

완전히 동이 튼 베이스캠프. 왼쪽 산이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 그 오른 쪽 산이&amp;amp;amp;amp;amp;nbsp;히운출리(Hiun Chuli 6441m).

 
맨눈으로 바라보기 부담스러운 ‘풍요의 여신’
 
마당을 걸어서 롯지 뒤편으로 간다. 작은 언덕이 있다. 나는 그 위에 올라서서 좀 더 가까이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를 느껴보고 싶었다. 롯지 뒤 언덕 위에는 오색의 불교 기도 깃발(룽타)이 차가운 바람에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이미 나 같은 사람들 여럿이 언덕에 올라서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난 이들과 좀 떨어진 곳 벼랑 끝에 서서 눈을 감아본다.
 

동이 터오면서 산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다. 곧 눈 부신 하얀 설산으로 다시 옷을 갈아 입니다.

 
“딱, 우르르~”
 
뭔가 급히 다가오는 듯한 소리에 놀라 화들짝 눈을 뜬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다시 눈을 감는다.
 
“와르르~ 쿵~!”
 
이번에는 좀 더 심각한 소리다. 눈을 떠 주위를 살펴본다. 아무 것도 없다. 이 때 또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발 저 아래, 까마득한 곳에서 바위와 돌, 흙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여기 내 발 아래에서 지금 크고 작은 산사태가 나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항상 변하고 있다.
 
오전 7시. 나는 삶은 계란과 토스트, 그리고 생강차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운다. 오전 8시. 하루 더 묵을까 생각하다 밤이 너무 길 것 같아서 그냥 ABC에서 내려가기로 한다. 전날 밤 나는 여기 ABC 생추어리 롯지의 내 방에서 헤드랜턴을 밝혀가며 달라이 라마의 <<용서>>를 마저 읽었다.
 

나도 개폼 잡고 한 컷 찍혀봤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의 반대편 루트를 택했다. 나는 푼힐 쪽 서쪽 루트로 올라서 뉴브릿지-란드룩-톨카-담푸스-패디-포카라로 방향을 잡았다.
 
오전 8시 반. 나는 ABC에서 내려간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언제 또 오나. 아쉬움에 아쉬움이 겹친다.
 
어제 나는 여기 ABC에서 두 젊은 미국 아가씨 엘렌과 케리를 만났고, 이들과 함께 포카라까지 죽 같이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지기 전날 술을 한 잔 마셨고, 몇몇 기막힌 사연도 만들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내려가기 전&amp;amp;amp;amp;amp;nbsp;나의 아침식사. 혹시 부실해 보이나??

 

지도의 오른쪽 아래가 포카라. 여기서 나야풀까지 택시로 이동한 후 북서쪽으로 루트를 잡아 비레단티(1050m)-티케둥가(1540)-반단티(2210)-고레파니(2860)-푼힐(3193)-고레파니(2860)-반단티(3180)-타다파니(2630)-촘롱(2170)-시누와(2360)-뱀부(2310)-도반(2600)-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3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까지 올랐다.
 
내려올 때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동쪽 루트를 따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데우랄리(3230)-히말라야(2920)-도반(2600)-뱀부(2310)-시누와(2360)-촘롱(2170)-지누단다(1780)-뉴브릿지(1340)-란드룩(1565)-톨카(1700)-담푸스(1650)-페디(1130)에서 택시를 타고 포카라로....
 
산에서의 순수 트레킹 일정은 9일이었고, 카트만두 인(in)-카트만두 아웃(out)까지의 일정은 13박 15일이었다.
 

** 2편부터 이 트레킹의 시작~마침까지의 이야기를 풀어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