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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물가에서 2023. 10. 30.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2023년 8월 17일 초판 23쇄.

 
 

비인간 구역으로 내몰리는 우리 사회의 배제된 자들

 
 
최근 프랑스에서 돌아온 한국의 노작가와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프랑스의 지성이, 언론이 다 죽었어. 너무 타락했어.”
이어지는 노작가의 말은 이랬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는데, 방송은 물론이고 이른바 좌파 신문조차 그 참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반면에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으로 죽은 이스라엘 시민들은 일일이 서사화되고 있다. 이스라엘 시민의 죽음은 서사가 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은 그저 숫자로 치환된다.
 
글의 서두에 뜬금없이 남의 나라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최근 한국 문학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포스트 휴먼’ 담론이 나로서는 좀 한가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담론의 거시적 관점이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소외, 혹은 배제되는 소수자/약자들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다.
 
인간과 기계/로봇, 과학기술 등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현존하는 인간을 넘어선 이른바 ‘신인류’를 지칭하는 포스트 휴먼은 인간종(種) 중심주의를 해체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사이보그로 대표되는 트렌스 휴먼이나 동물은 물론이고 인간이 만든 기계(로봇, AI) 등도 모두 포스트 휴먼 범주에 들어간다. 포스트 휴머니스트들이 그리는 세상은 인간 위에 기계 없고 인간 아래 동물이 없는, ‘유토피아’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회의적이다.
 
 

거시적 포스트 휴먼 담론이 불편한 이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도 보듯이 인간 세상만 해도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인식이 넘친다. 나치에 당했던 ‘인종 청소’를 지금 ‘절멸’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이 그대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지르고 있다.
 
이런 피아식별이나 정상/비정상 같은 이분법적 사고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숙인 등이 사회적 약자가 되고 배제되는 게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심지어 노동 계급 안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분리ㆍ배제되고 있다.
이런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하면서 포스트 휴먼 같은 ‘연구실 담론’이 지금 시급한 것인가.
 
최근 읽은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런 나의 깜깜한 회의를 밝히는 한 줄기 빛이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 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 8편의 단편 소설로 묶인 이 책에는 다양한 비인간 캐릭터가 등장한다.
 
각각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비인간 캐릭터들은 나에게 배제된 자(<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소외된 사람(<관내 분실>), 장애인(<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소수자(<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혹은 이방인(<스펙트럼>) 등으로 읽힌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장애인들에게 시설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인간배아를 디자인해 탄생한 완벽한 인간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개조되지 않은 인간들을 외곽으로 밀어내는 지구. 그리고 또 다른 행성에는 배아 디자인 과정에서 유전적 결함을 제거하지 못한 사람들이 차별과 배제가 없는 ‘마을’을 형성해 살아간다. 이 마을에서 성년이 된 아이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순례한다. 그런데 매년 그 순례자들의 절반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서 마을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격리된 공간이다. 마을의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지구 순례를 마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그 마을이 이들에게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뜻이다. 장애인들의 탈시설화가 왜 중요한지 작가는 말하고 있다.
 
 
<스펙트럼>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스펙트럼>은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에 대해서 묻는 작품이다.
우주항공회사가 지원하는 연구소 ‘스카이랩’의 촉망받는 연구원이자 우주인 희진은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불시착한다. 거기서 외계 생명체들을 만나고 이들 중 여러 명(?)의 ‘루이’와 함께 살며 서로 교감하는 이야기이다. 서로의 음성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희진은 마침내 루이가 그린 그림의 색깔 언어 한 조각을 해독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그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생물이다.’
 
 
<공생 가설>
우리가 모르는 타자와의 관계 맺음
<공생 가설>은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다. 아이들의 뇌 속에는 7살 때까지 외계 생명체가 공생한다. 인류 탄생 때부터 공생해 온 ‘그들’은 아기의 뇌 속에서 아기가 7살이 될 때까지 사랑, 윤리, 이타심 등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가 7살이 되면 떠난다. 단 한 사람, 류드밀라에게만 빼고. 류드밀라는 성장한 후에도 외계 생명체의 고향 행성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가 그린 그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동권을 빼앗긴 사람들
이 소설집의 제목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자본의 논리에서 배척당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주 행성 간의 이동이 가능한 시대. 우주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100년 넘게 기다리는 노인 안나. 안나는 자신이 연구한 딥프리징(냉동 수면) 기술로 170세까지 살고 있다. 젊은 시절 먼저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이주한 남편과 아들을 만나기 위해.
 
안나는 빛의 속도(혹은 그 이상)로 이동할 수 있는 워프항법과 그 우주인을 실어나르기 위한 딥프리징 기술을 개발했지만 곧이어 발견된 웜홀 때문에 자신의 연구는 빛이 바랜다. 그리고 우주 연방은 웜홀이 뚫려있지 않는 슬렌포니아 행 노선을 폐기한다. 슬렌포니아는 워프항법으로는 몇 만 년이 걸리는 거리에 있다.
 
자본의 논리가 이렇다. 한국의 그 많던 시외버스 터미널이 하나씩 없어지고 있다. 곧 있으면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도 사라질 것이다.
 
 
<관내 분실>
경력 단절 여성, 그 소외된 자아
죽은 사람의 기억 데이터를 모아 남은 가족과 연결해주는 가상 세계의 ‘마인드’를 보관해주는 ‘도서관’이 있다. 지민은 이 도서관에서 엄마의 마인드 인덱스가 분실됐다는 걸 알게 된다.
 
살아 있을 때 지민의 엄마는 지민을 낳고 산후 우울증을 겪었고, 경력 단절 이후 지민과의 사이가 더 멀어졌다. 지민 역시 그런 엄마를 살가워하지 않았다. 그랬던 지민은 임신 후 자신도 태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모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민.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의 마인드와 접속할 수 있는, 젊은 엄마가 표지를 디자인 한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가서 어렵사리 엄마의 마인드와 만난다. 거기서 지민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이제 엄마를 이해해요.’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정상성에 대한 질문
미국 항공우주국의 백인 우주인과 더불어 뽑힌 단 한 명의 아시아계 우주인 재경은 48세의 미혼모다. 그녀는 우주 너머의 또 다른 우주로 들어가는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사이보그가 된다. 그러나 그녀는 우주선을 타는 대신 해안 절벽에서 뛰어내려 심해로 사라진다. 가윤에게 이모 재경은 영웅이다. 그런 재경을 따라 가윤도 항공우주국의 아시아계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가윤 역시 재경이 그랬던 것처럼 사이보그로 변하고, 재경이 하지 않았던 우주 터널을 통과한다.
 
이 작품은 이른바 ‘성공한 소수자’ 서사의 주인공인 재경이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편견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해방’하는 걸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혼모 커뮤니티로 맺어진 대안 가족이 우리 사회에 ‘정상성’이란 무엇인지도 묻는다.
 
 
비인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비인간 캐릭터들을 고통 속에서 살거나 억압받는 상황으로 그리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전공(화학과를 졸업하고 생화학을 전공했다.)을 십분 살려 SF적 상상력을 펼치면서 이들 비인간 캐릭터를 전 우주적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얼핏 장르 소설(SF 소설)처럼 보이지만 김초엽 작가의 이 작품들은 판타지의 옷을 입은 리얼리즘 소설이다.
 
작가가 이 소설집에서 그리고 있는 비인간 캐릭터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그래봐야 우리는 각자 결함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고, 그 ‘다름’을 비정상이라고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유토피아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