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루리. 문학동네. 2021)
2024년 4월 18일 세상을 떠난 우리 시대의 어른 홍세화.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는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세 가지 성격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이다. 늙은 코뿔소와 어린 펭귄의 멀고 험난한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어린 독자들에게 민주시민의 세 가지 성격 중 연대성과 주체성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나(내)’가 어린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이 작품에는 곳곳에서 ‘연대’의 소중함이 잘 드러난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고아원 코끼리들에서, 코뿔소 노든이 만난 파라다이스 동물원 앙가부의 친절에서, 잘 보이지 않는 치쿠의 오른쪽 눈이 되어주는 웜보에게서….
이런 연대와 배려는 작품에서 직접 언급돼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할머니 코끼리의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12쪽)” 같은 말이다. 연대에는 이종(異種)의 벽도 없다는 걸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 어린 펭귄과 코뿔소 노든의 대화에서 아이들은 연대란 성별이나 나이, 인종, 직업 등을 초월하는 거란 걸 알게 될 것이다.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중략)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94쪽)
작품은 또 아이들에게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라는 걸 알려준다.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는 작품의 앞뒤로 데칼코마니처럼 맞닿아 있다.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는 노든에게 다른 코끼리들이 하는 말과 어린 펭귄과 헤어질 때 하는 노든의 말이 그것이다.
“(중략)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16쪽)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116쪽)
작품의 말미에도 ‘나’의 주체적인 홀로서기가 나온다. 결국 ‘나’는 천신만고 끝에 바다에 닿고, 곧 바닷물 속으로 모험을 떠나 별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그러려면 ‘나’는 이제부터 홀로 ‘긴긴밤’을 견뎌내야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에게 ‘이 사회의 주체는 나 자신’이라고 말하면서도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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