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하고 안 놀아』(현덕. 창비. 2010 개정판)
재미있다. 현덕의 동화집 『너하고 안 놀아』를 읽은 뒤 나의 첫 느낌은 그랬다. 더 나아가 아동청소년문학은 다양한 연령층에게 말을 거는 문학이라는 걸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17개의 작은 이야기가 담긴 1부는 내 어린 시절 동네와 동무들, 그리고 그 골목 안 풍경을 마치 영화처럼 떠올리게 한다. 20개의 제법 묵직한 단편으로 엮인 2부는 ‘인간의 삶과 세상의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문학의 본질을 서사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옥수수과자를 혼자 다 먹고 빈 종이로 입을 닦는 기동이에게 영이는 “너구 안 놀아. 당최 안 놀아 뭐.”라고 쏘아붙이고는 기동이에게 흙 한 줌을 끼얹고는 달아난다(<옥수수과자 26쪽>). 그런 기동이는, 물딱총을 혼자만 가지고 놀고 옥수수과자를 혼자만 먹은 기동이는, 동무들의 전차 놀이에 끼지 못한다(<새끼 전차 28-30쪽>). 그러다가도 기동이는 동무들에게 과자를 나눠준다. ‘너구만 놀게’ ‘생전 너구만 놀게’라는 동무들의 말을 믿고 기동이는 동무들에게 자신의 과자를 나눠준다. 그러나 기동이의 과자를 다 먹은 동무들은 더 이상 기동이를 따라가지 않는다(<과자>).
1970~19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독자라면 『너하고 안 놀아』를 읽으며 빙긋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약국집 아들 성찬이가 가죽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동네 공터에 나왔을 때, 맨손 고무공으로 야구 놀이하던 나와 동무들은 성찬이의 가죽 야구 글러브를 한 번씩 껴보고 싶어 했다. 기동이의 과자가 먹고 싶었던 노마와 영이와 똘똘이처럼.
『너하고 안 놀아』는 이처럼 어른 문학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일종의 향수를 어른 독자에게 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미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삶의 조건과 그 다양성을 아이들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풀어낸다.
작품은 아이들의 작은 우정에 감탄하고(<우정>), 친구를 의심하지 말자(<의심>)는 계몽적 성격을 넘어 가슴 먹먹함까지 느끼게 한다. 특히 <조그만 어머니>는 70, 80년대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하던(?)’ 우리의 그 시절과도 맞닿아있다. 과일 행상 나가서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기 업은 영이에게 이태준의 동화 <엄마 마중>이나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이 오버랩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상투적인 말일 수 있지만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작가 현덕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그의 작품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이 책을 엮은 원종찬 교수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펭귄과 코뿔소가 펼쳐 보이는 주체와 연대의 로드무비 (2) | 2024.06.09 |
---|---|
지구별에서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 (2) | 2024.06.08 |
소설, 혹은 소설적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문학적 가치는? (3) | 2024.04.21 |
서평_김영하 『작별인사』 (1) | 2024.01.17 |
이수경 『너의 총합』을 읽고 (1) | 2024.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