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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등하게 가난했던, 그 아련하고 먹먹한 시절

by 물가에서 2024. 6. 9.

현덕. 창비. 2010 개정판.

 

너하고 안 놀아(현덕. 창비. 2010 개정판)

 

재미있다. 현덕의 동화집 너하고 안 놀아를 읽은 뒤 나의 첫 느낌은 그랬다. 더 나아가 아동청소년문학은 다양한 연령층에게 말을 거는 문학이라는 걸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17개의 작은 이야기가 담긴 1부는 내 어린 시절 동네와 동무들, 그리고 그 골목 안 풍경을 마치 영화처럼 떠올리게 한다. 20개의 제법 묵직한 단편으로 엮인 2부는 인간의 삶과 세상의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문학의 본질을 서사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옥수수과자를 혼자 다 먹고 빈 종이로 입을 닦는 기동이에게 영이는 너구 안 놀아. 당최 안 놀아 뭐.”라고 쏘아붙이고는 기동이에게 흙 한 줌을 끼얹고는 달아난다(<옥수수과자 26>). 그런 기동이는, 물딱총을 혼자만 가지고 놀고 옥수수과자를 혼자만 먹은 기동이는, 동무들의 전차 놀이에 끼지 못한다(<새끼 전차 28-30>). 그러다가도 기동이는 동무들에게 과자를 나눠준다. ‘너구만 놀게’ ‘생전 너구만 놀게라는 동무들의 말을 믿고 기동이는 동무들에게 자신의 과자를 나눠준다. 그러나 기동이의 과자를 다 먹은 동무들은 더 이상 기동이를 따라가지 않는다(<과자>).

 

1970~19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독자라면 너하고 안 놀아를 읽으며 빙긋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약국집 아들 성찬이가 가죽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동네 공터에 나왔을 때, 맨손 고무공으로 야구 놀이하던 나와 동무들은 성찬이의 가죽 야구 글러브를 한 번씩 껴보고 싶어 했다. 기동이의 과자가 먹고 싶었던 노마와 영이와 똘똘이처럼.

 

너하고 안 놀아는 이처럼 어른 문학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일종의 향수를 어른 독자에게 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미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삶의 조건과 그 다양성을 아이들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풀어낸다.

 

작품은 아이들의 작은 우정에 감탄하고(<우정>), 친구를 의심하지 말자(<의심>)는 계몽적 성격을 넘어 가슴 먹먹함까지 느끼게 한다. 특히 <조그만 어머니>70, 80년대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하던(?)’ 우리의 그 시절과도 맞닿아있다. 과일 행상 나가서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기 업은 영이에게 이태준의 동화 <엄마 마중>이나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이 오버랩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상투적인 말일 수 있지만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작가 현덕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그의 작품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이 책을 엮은 원종찬 교수의 수고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