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속 인간의 ‘이야기’와 포스트휴먼
SF소설에는 대부분 비인간 캐릭터가 등장한다. 외계 생명체, 사이보그, 클론, 인공지능(AI) 등 SF소설에 나오는 비인간 캐릭터들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유기/비유기물이거나 이미 우리 곁에 와있는 미래의 인공물이다. 서사물의 배경과 캐릭터가 현실사회와 인간의 거울이라면 비인간 캐릭터가 등장하는 SF소설 역시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이 작품은 ‘인간 이후의 인간’, 즉 포스트휴먼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작별인사』에 등장하는 포스트휴먼들은 당연히 비인간 캐릭터들이다. 철이와 달마로 대표되는 휴머노이드와 복제인간(클론) 선이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작품의 주동인물(프로타고니스트, protagonist)인 철이는 인간과 아주 흡사하게 만들어진(인간의 마음을 잘 구현한)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이다.
이 작품에서 철이의 여정은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의 여행> 공식인 출발/분리-하강/입문/통과-귀환을 따르는 듯 보인다. 이 여정에서의 철이 캐릭터를 아크 유형으로 분석하면 부정적 변화 아크 중에서도 환멸의 아크에 가깝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끈질기게 붙어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는 의식을 클라우드에 백업하지 않은 휴머노이드의 죽음을 뜻하는 동시에 ‘필멸’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포스트 휴머니즘과 인간의 조건
이 작품에서 포스트휴머니즘적 장치는 2장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가야 합니다’에 복선처럼 삽입돼 있다.
그는 꽤 오랫동안 고양이 로봇을 설계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녀석이 바로 데카르트였다._28쪽
여기서 최진수 박사가 만든 고양이 로봇의 이름이 데카르트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분리돼 있다는 이원론을 주장한 철학자이다. 이런 데카르트의 주장은 근대 휴머니즘 사상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핫산과 헤러웨이를 거쳐 브라이도티로 이어지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은 전통적인 휴머니즘을 해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휴머니즘은 인간종(種) 중심주의이고, 그 저변에는 ‘유럽의 백인 남성이 정상성을 가진 휴먼’이라는,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관점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즉 남성/여성, 백인/비백인, 정상/비정상, 인간/비인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게 이들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의 주장이다.
포스트 휴머니즘은 기술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트랜스 휴머니즘도 경계한다. 트랜스 휴머니즘 역시 궁극에는 인간종 중심주의의 다른 말이라는 게 포스트 휴머니스트들의 주장이다.
휴머니즘 사상의 해체를 뜻하는 장면은 13장 ‘아빠의 마음에 찾아온 평화’에서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의 죽음으로 표현된다. 최 박사는 철이의 뇌가 백업된 데카르트를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로 내려쳐 죽인다.
그는 데카르트를 공격했다. 낡은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는 이리저리 그의 공격을 피했으나 결국 노루발못뽑이에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그는 나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저 둔한 로봇이 내 의식의 그릇이었던 것이다._261쪽.
여기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행간은 휴머니즘의 해체뿐 아니라 의식(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데카르트 사상의 파괴이다. 육체 없는 의식은 클라우드에 백업되어 네트워크상에 떠도는 인공지능을 가리킨다.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중략)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_242쪽
서로를 연결하고 스스로 학습하면서 진화하는 인공지능도 물리적 형태가 없이는 공허한 존재일 뿐이라고 작가는 철이를 통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 박사는 포스트 휴머니스트일까? 6장 ‘실패한 쇼핑의 증거’에서 트랜스 휴머니스트인 김 박사와 언쟁을 벌이는 최진수 박사는 얼핏 포스트 휴머니스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철저한 인간종 중심주의자, 즉 휴머니스트라는 게 작품 곳곳에 직접 설명돼 있다.
그는 달마와 달마가 하고 있는 일을 당국에 신고했다. 인공지능들이 스스로를 설계하고 생산까지 하는 것은 인류의 운명을 위협한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_257쪽
싱가포르 시절, 최 박사에게 뇌를 백업하고 영생하지 않겠느냐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많은 인간이 그렇게 하고 있을 때였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여전히 육신 없는 영생은 바라지 않는다고,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_268쪽
이 작품은 원래 작가 김영하가 2019년 한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발표한 200자 원고지 420매 분량의 경장편 소설이었다. 『기계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그때의 작품을 김영하는 2년에 걸쳐 장편 소설로 개작했고, 그것이 『작별인사』가 됐다.
그런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던 소설의 초고(『기계의 시간』)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이야기(『작별인사』)가 됐다는 인터넷 서점 소설 MD의 작품 분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작별인사』는 그 자체로 다분히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를 묻는 작품이고, 작가는 이 책에서 그 답을 분명하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조건으로 ‘이야기(서사)’를 말한다. 선이가 철이에게 하는 말들에서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달마가 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야기가 없는 의식이야. 달마는 그걸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라고 보는 것 같아. (중략) 그런 의식은 탄생도, 고통도, 죽음도, 개별성도 없어._202쪽
아직은 나도 있고 너도 있어. 나의 이야기도 있고, 너의 이야기도 있어.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_203쪽
그리고 선이는 철이가 읽어주는 책(『빨간 머리 앤』) 속의 이야기를 들으며 숨을 거둔다.
인간은 각자 고유한 삶의 서사를 가진다
작가 홍세화는 최근 프랑스에 다녀온 후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는데, 방송은 물론이고 이른바 좌파 신문조차 그 참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반면에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으로 죽은 이스라엘 시민들은 일일이 서사화되고 있다. 이스라엘 시민의 죽음은 서사가 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은 그저 숫자로 치환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삶에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각자의 이야기(서사)는 고유한 것이고, 필멸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고유한 서사는 공감으로 교류한다. 김영하는 『작별인사』에서 인간의 조건으로 이야기, 즉 서사를 꼽고 있다. 그리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이 그 이야기를 어루만지거나 빛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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